자유를 지키는 네 가지 방법
“자유를 지키는데는 네 가지의 상자를 사용할 수 있다: 비누상자, 투표상자, 배심원단 (Jury Box), 그리고 총알상자가 그것이다. 반드시 이 순서대로 사용하라.” — 에드 하우더쉘트
문화적 차이가 있으니 약간의 설명을 하자면, 비누상자는 보통 사람들이 길거리에 놓고 올라가서 연설을 하는데 사용된다. 에드 하우더쉘트는 시민들의 여론을 말한 걸거다.
투표상자는 지구 어디나 똑같으니 설명을 않겠다. 아마 짐바브웨는 예외 인 모양이지만.
“상자” 라고 해놓고 갑자기 배심원단이 나왔는데, 법정의 배심원석이 마치 구두상자처럼 생겨서 보통 그렇게 부른다. 법적인 해결을 얘기하는거다.
총알상자야 뭐, 그야말로 지구 어디나 똑같다. 짐바브웨를 포함해서.
마크 필그림이 저 글을 인용한 것은, 미국의 일부 시민들이 추진하는 부쉬 탄핵에 대해서다. 마크 필그림은 앞의 세 상자를 다 썼으니 이제 어쩌냐는 얘긴데…
한국은 순서가 거꾸로다. 법적 해결은 작년에 실패했고, 투표도 실패했다. 최근의 보궐선거 결과는 당정도 좀 심각하게 받아들인 모양이지만, 결국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아직은 사람들이 비누상자에 매달리고 있지만, 2차 고시 강행 이후 진압이 폭력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고 한다.
정부가 정신차리지 않으면, 사람들의 인내심이 언제 바닥날지 모르겠다.
사실 애초에 상자 순서를 잘못 쓴 게 문제였다. 제 정신 박힌 한나라당 지지자였다면 경선 과정에서 비누상자와 투표상자를 제대로 휘둘렀어야 했다. 배심원단이야, 한국엔 아직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더라도… (배심원제에 찬성하는건 아니다. 말이 그렇다는거지)
최근의 사태가 대의민주주의의 붕괴라고 말들 많은데, 돈이 얽혀 답이 안 나오는 지역 자치보다는 정당 활동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데서는 얘기 안하지만, 여기서야 뭐…)
“진압이 폭력적이 되어가고” 있는 큰 이유가 시위가 폭력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텐데. (물론 서로 상호작용하는 형국이겠지만.)
전경에게 손가락을 물려 손마디가 잘렸다는 얘길 들으면서, 손가락을 문 측만 욕을 하고, 손을 입에 집어 넣은 측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걸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참가자들 얘기만 들어서 그런진 몰라도, 대부분의 시위 폭력은 버스 등을 뒤집는 기물 파손에 가까운 반면, 진압 폭력은 철저히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더군.
옳고 그름을 떠난다고 해도, 좋은 진압 방법으로 보이진 않는다.
http://atreyu.tistory.com/174